하나님을 경험하는 첫 번째 이야기
(그랜드 캐년에서 생긴일)
세인성형외과에서 IMF가 시작되던 1998년에 갑자기 환자가 줄어서 세 명이 근무하는 병원에 한 사람만 있어도 될 정도로 일이 없던 상황에 두 사람이 남기로 하고 한 사람은 미국에 1년간 공부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순번으로 따지면 꼴찌였지만 두 분은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제가 먼저 가기로 했습니다.
1달러에 2000원 가까이 오르내리던 불안한 상황에서 많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동생이 살고 있던 보스톤 근처로 가고 싶은 생각에 많은 대학병원에 1년간 교환교수 비자를 줄 수 있는 지여러 군데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동물실험을 하는 조건으로는 하버드 대학병원에서도 1년 비자를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만 aaa개원한 성형외과의사는 여러 군데 수술을 보러 다녀야 하는데 토끼 갖고 실험만 한다는 것은 저에게 족쇄만 된다는 생각에 실험을 조건으로 하는 연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안면이 있던 MD Anderson 암센터에 병리학과장으로 계시던 노재윤박사님과 연락이 닿았고 휴스턴의 Baylor 대학병원의 성형외과에 전화 한 통화로 1년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 노재윤박사님의 조건은 교회 나오라는 것이었구요, 휴스턴에 가 있는 1년간 여기 저기 가슴성형을 잘하시는 분들을 많이 찾아 다니며 돈과 시간을 많이 써가며 좋은 경험을 많이 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시기 위해 휴스턴으로 부르셨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휴스턴의 서울침례교회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을 믿도록 하는 일에 집중하는 교회였습니다. 불신자나 초신자는 극빈대우를 받는 상황이었구요.
제가 생각했던 교회는 나이 많은 장로나 집사가 호령하고 젊은 초신자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이었는데 그 곳 상황은 관록 있으신 분들이 제일 굳은 일들을 하시면서도 섬기는 기쁨이 있어 보여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그 곳에서 목장이라는 소그룹 가정모임을 가졌는데 그 곳 역시도 하나님을 잘 모르는 저희 가정을 위한 많은 배려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미국서 20년 이상 사시면서 사업에 성공하신 분들이나 회계사로 열심히 살고 계시는 분의 가정이 저희 가족이 낯선 미국에 자리잡는데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감사함과 더불어 그 분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간접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37세의 젊은 가장과 35세의 예쁜 아내, 장난꾸러기 두 아들(초등1년 4년)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을 갈 때 여러 가지 목적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있었는데 아이들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투자해서 온 미국 생활에서 뭔가 아이들이 얻어가야 한다는 아빠의 강박관념과는 달리 아이들은 게임보이나 포켓몬 카드에 열중하는 상태였습니다.
지금 당시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 제 기억속에 아이들 보다는 훨씬 어린 아이가 사진에 있는 것을 보고
“진석아 너 뭐한거니?” 하며
당시 아이들에게 요구했던 어른스러운 생각과 절제가 부끄러워지곤 합니다.
1999년 7월(미국생활 2개월, 교회는 다녔지만 믿음이 없던 어느 날)
샌프란시스코에서 학회를 참관하고 난 후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렌터카로 라스베가스에서 후버댐을 경유하여 그랜드캐년을 통과하여 유타를 돌아서 다시 라스베가스로 돌아오는 드라이브코스를 정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곳저곳 마구 돌아다니는 여행은 좋아하지 않으며 한 곳에서 푹 쉬는 휴가를 좋아하는 편이고 제 아내는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상태,
아이들은 게임보이 외에는 관심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이 번 여행 코스는 나중에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 중 누구를 위한 여행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미국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고 아이들은 아빠가 가자니까 따라나선 것이고 아내는 둘 사이를 조율하는 상태였습니다.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자거나 게임보이를 하거나 서로 게임보이를 하겠다고 싸우거나 하며
바깥경치를 좀 보라는 소리를 할 때만 창 밖을 힐끔 보고 다시 원위치.
아내와 저는 아이들을 위해서 부모로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강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행 경로
그랜드 캐년 남쪽 진입로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4-5시 정도였는데 숙소를 알아보고 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석양의 그랜드캐년도 좋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와서 자더라도 미리 서쪽(West limb)이라도 먼저 봐야지 하는 생각에 계속 전진을 했습니다.
그러나 서쪽 그랜드캐년을 봤을 때 풍광도 별로 였고 사진에서 보았던 장관이 별로 눈에 띄지 않으며
고소공포증이 있던 아내도, 경치에 관심이 전혀 없는 아이들에게도, 짜증나는 일이었습니다.
개그맨이 웃기는 소리를 했는데 조용한 관중들 앞에서의 기분이 이럴까?
저는 풍광이 사진에서 본듯한 경치를 찾기 위해 동쪽(East limb)으로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사진에서 많이 보던 장관을 찾았는데 제 소감은 사진과 별 다를 게 없네 하는 정도였고 아내는 난간 근처로 오지도 못하는 상태.
아이들은 아빠 눈치만 보고 경치는 관심이 없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좀 더 큰 자극을 위해 난간을 넘어가서 아이들을 부르자 아이들도 울고 아내도 빨리 나오라고 아우성인 상황.
내일 이곳을 다시 찾아오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되리라는 생각에 나머지 부분도 마저 대충 보고 지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되어 웬만한 곳은 스킵하면서 동쪽 그랜드캐년의 거의 끝까지 갔습니다.
저녁9시에서 10시사이 동쪽 끝 그랜드캐년에 있는 식당도 끝났고 주유소도 사람은 있는데 기름을 넣어주지 않는 상황.
남쪽 입구까지는 100km이상을 되돌아가야 하고 지도상으로 100km정도 가면 Cameron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 상황.
렌터카의 계기판은 남은 기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120km.
배고프고 피곤한 가족들의 원성이 한계상황이 있는 상태에서 되돌아갔을 때를 생각해봤습니다. 7월 성수기에 방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계속 가던 방향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불빛이 전혀 없는 칠흑같은 어두움을 뚫고 곰과 늑대같은 야생동물을 조심하라는 팻말을 지나치며 다들 불쾌지수가 올라간 상태에서 기름을 절약하느라 에어콘을 끄고 창문을 열고 운전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저의 예상과는 달리 지도상 10km도 채 오지 않았는데 남은 기름으로 갈 수 있는 거리는 100km.
10km쯤 더 갔을까? 지도상의 거리와 남은 기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같아지고 이런 식으로 기름이 줄어들면 중간에 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불안해하며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서 여행할 때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지 계획성 없이 여행하는 것은 참 무모하다.
우리 아빠는 여행할 때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하고 이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울고 있는 아내에게 저역시 언성을 높였고 뒤에 있던 아이들도 덩달아 두려워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교회는 나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던 아내가 갑자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어려운 상황에 빠졌습니다. 가장이 가족을 잘 못 인도해 어려움에 빠뜨렸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희가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믿음이 없던 아내의 절박한 기도가 끝나자 채 1분도 안되어서 남은 기름으로 갈 수 있는
예상거리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차가 전진 중인데 예상거리는 점점 더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면서 언제 울었냐는 듯 의기 양양해지고 저도 아이들도 매우 기뻤습니다.
우리 차가 계속 오르막을 오르면서 에어콘도 켜져있는 상태에서 기름소모량이 많다가 내리막을 만나고 에어콘을 끄고 경제속도로 차를 움직여서 예상거리가 올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는 되었지만 이런 우연이 기도후에 바로 일어난 것이 신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의 시작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이런 일이 있는 것을 본 아내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확신으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신기하다 하면서 같이 안도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분위기는 급반전되었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남은 기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기도할 당시와 거의 같은 80km정도였습니다.
기름을 넣고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위해 육포와 간식거리를 사고 주유소에서 가까운 숙소를 물었습니다. 가던 방향으로 1마일정도 가면 인디언 포스트(옛날 역마차 정거장)이 있다고 하여 찾아갔습니다.
카메론의 인디언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붙어있는 통나무 모텔을 다른 곳의 반값 정도에 묵었습니다.
저녁 11시반정도 되었는데 식사를 못했다며 배가 고픈데 근처에 먹을 것이 없냐고 했더니 상점 안쪽으로 식당이 있는데 12시까지니까 들어가보라 하여 때늦은 식사도 맛나게 하였습니다.
모텔은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깨끗한 모텔로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였습니다.
정말 긴긴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며 씻지도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 5시반정도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제는 정신 없이 잤는데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하며 방문을 열고 나온 순간
아~~~ 신음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묵었던 방문은 서향이었고 방에서 나온 난간은 이층높이인데 몇m앞에 절벽이 있어서 내 눈에는 바로 절벽이 보였습니다.
마치 타이타닉 뱃머리의 느낌이었습니다.
더구나 문앞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랜드 캐년 협곡의 시작부위였으며 좌우로 도열한듯한 병풍과 같은 절벽이 눈앞에 펼쳐지며 머리 뒤쪽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이 절벽을 비춰서 마켄나의 황금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절벽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말로 표현이 안되어 아내를 깨워서 나와보고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치 때문에 그 후에는 간밤에 아내의 기도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에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내와 함께 펑펑 울었습니다.
저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우연 같은 일들을 늘어뜨리시고 그 앞에서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23편 1절-3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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